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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10·27법난 문예공모전

2018.06.15(금) - 2018.09.0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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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최우수] 오욕의 불교에서 중흥의 불교로 - 서동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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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0-10 17:57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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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의 불교에서 중흥의 불교로

 

서 동 숙

 

무상각님! 

올해는 참으로 무덥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 하루도 빠짐없이 법당을 깨끗이 청소하고 부처님께 온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는 무상각님의 불심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더위는 인간의 상념조차 앗아 가는가 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위를 핑계로 읽는 것을 미뤄둔 신문 하단에서 “10. 27 법난이란?” 이란 문장을 보았습니다.

10. 27 법난이란 “1980년 10월 계엄사령부의 합동수사본부 합동수사단이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대한불교 조계종의 승려 및 불교 관련자를 강제로 연행, 수사하고 포고령 위반 수배자 및 불순분자를 검거한다는 구실로 군. 경 합동으로 전국의 사찰 및 암자 등을 수색한 사건을 말합니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포고령 위반, 수배자, 불순분자, 검거, 군, 경 합동, 수색. 스님들과 전혀 연관이 되지 않는 단어들로 문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나니 더위에 지쳐 무기력해진 몸과 마음이 몇 배나 더 힘이 듭니다.

 

무슨 연유로 스님들이 검거되고 무슨 까닭으로 청정하기 그지없는 사찰과 암자가 수색되었는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10. 27 법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저는 숙제를 하듯 자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정목스님의 해설이 더해진 동영상과 MBC 방송을 보았습니다. 스님들께서 기록하신 글도 보았습니다. 하나하나 자료를 찾아낼수록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리고 법난이란 단어조차 모른 채 불자라며 살아온 제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1980년 하면 저는 항상 광주를 떠올립니다. 광주라는 지명은 민주주의라는 단어와 함께 하고 우리 국민 모두는 광주에 빚이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1980년은 광주의 아픔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불교계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의 역사를 갖게 한 1980년이었음을 오늘 알게 된 것입니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흔들릴 때 마다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부처님께 기도를 하는 불교 신도로서 불교의 아픈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하고 법난이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이런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1600년간 면면히 이어온 우리 불교는 국가가 위기에 처해질 때마다 호국 불교로서 국가의 안위를 지켜왔습니다. 누란의 위기에 놓인 국가를 위해 홀연히 일어나 역사의 한 축이 되어온 한국 불교가 짓밟히고 찢긴 법난이 있었건만 이를 기억하는 불자는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무상각님은 1980년 10월 27일의 법난을 알고 계십니까?

광주의 소중한 피를 딛고 자리한 정통성 없는 군부는 불교계의 지지를 원했지만 원로스님들께서는 군사정권의 지지를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 불교계의 지지를 받지 못한 군부의 핵심은 서슬 퍼런 계엄령 속에 치안 강화와 사회 정화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전국의 사찰을 군화로 짓밟았습니다.

주지스님, 총무스님, 재무스님 등을 중심으로 강제 연행했습니다. 스님들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고 연행한 후 일제 강점기 때 행해지던 말로만 듣던 고문을 서슴치 않고 자행했습니다. 고춧가루를 탄 물로 고문을 하며 밤새도록 잠을 재우지 않고 반복되는 질문은 헛소리를 하게끔 까지 하였습니다. 때리고 또 때려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간첩과 접선을 했다는 황당한 죄목으로, 횡령과 요정 운영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죄목으로, 목탁재벌이란 기상천외한 단어로 스님들을 옭아매었습니다. 정권 야욕에 불타 오른 군부는 1600년의 유구한 호국 불교를 부끄럽기 그지없는 치욕의 역사로 바꾸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45번지’인 조계사의 지번을 본 따 ‘45계획’ 이라는 이름으로 불교를 탄압한 것입니다.

삼청 교육대가 어떤 곳입니까. 부랑아, 걸인, 깡패. 이러한 단어가 주는 어감만으로도 공포를 주던 곳 아닙니까. 상원사 삼보스님께서는 이렇게 기막힌 곳에서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끌려가 무법천지의 지옥을 경험하셨습니다. 없는 죄를 뒤집어쓰신 스님께서는 승복을 벗고 승적을 박탈당해 4년이나 지나서 복권이 되셨습니다.

도선사의 혜성스님은 청담 중,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까지 설립하시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불교계 중흥을 위해 후학을 지도하고 계시던 스님께서는 낮에는 주지, 밤에는 요정 경영자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죄목으로 끌려가셨습니다. 17억이 넘는 금액을 횡령했다고 목탁재벌이라며 언론은 떠들어댔습니다. 언론은 보도지침이라는 허울에 얽매여 합동 수사본부의 지시에 따르며 불교를 악의 무리로 규정하기에 바빴습니다.

불교 중흥에 힘을 쓰시던 젊은 스님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1980년 10월 30일에 투망 식으로 일제 수색을 벌인 32,000여 병력은 5,700명의 스님들에게 오욕과 수치심을 안겨 주었습니다. 한국 불교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봉암사 역시 성철스님, 청담스님, 자운스님의 고귀한 발자취가 그윽했지만 법난에 짓밟혔던 것입니다.

정통성을 갖지 못한 그들은 스님들의 부정 축재가 200억이라 떠들어대며 비리 승려라는 이름으로 18명을 구속했고 32명의 스님들의 승적을 박탈했습니다. 참선이라는 이름 아래 흥국사에 감금된 24명의 스님들은 100일간이나 고통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기도 도량인 흥국사는 공포감으로 가득했고 망원렌즈가 있네, 녹음을 하네 하는 갖가지 설로 무성했던 것입니다.

고통의 나날을 견뎌내고 돌아온 스님들을 보는 신도들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고 개종한 신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믿고 따랐던 스님이 간첩이었고, 교육자인줄 알았던 스님이 횡령한 사기꾼에 불과하며, 청정 비구스님인줄 알았는데 목탁재벌로 삼청 교육대에 다녀온 파렴치범이라고 하니 언론을 믿고 있던 다수의 신도들은 얼마나 많은 심적 고통을 안고 살았겠습니까?

저간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불교 신자들은 호도된 언론을 믿고 있었습니다. 보도 지침이라는 사전 검열 지침에 따르던 언론은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연일 불교 정화니 사회 정의니 하고 떠들어 댔습니다. 스님들을 고문하고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법난은 신도들의 가슴도 피폐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무책임한 언론의 선동으로 인해 수많은 신도들은 개종을 하고 마음 아파하며 사찰을 떠난 것입니다.

100만 신도들은 절을 떠났고 하루아침에 정화 대상자가 되어 범죄자요, 우범자가 된 스님들은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신도들의 냉담함을 보고 있어야만 하는 법난의 피해를 입은 스님들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무상각님! 

법난의 피해를 고스란히 상처로 간직한 불교계는 이토록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1986년 해인사 전국 승려대회를 필두로 10. 27 법난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불교도들도 1980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0. 27 진상규명추진위원회’의 노력으로 피해자들은 서서히 아픔을 말하기 시작했고 강 영훈 전 국무총리는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사람들을 향한 사과는 법난 규명에 한계를 갖게 했습니다. 1988년 청문회에 나선 전 두환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바쁜 때이므로 집행기관을 자세히 챙기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3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법난의 피해를 입은 스님들은 정신과 육체의 고통에서 신음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피해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보상은 커녕 그 누구도 나서서 법난의 책임자였노라 고백하지 않습니다. 아픔은 현존하고 있으며 그 아픔으로 인해 오욕의 불교는 치욕스러워 하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진실된 사과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1980년 그해에 불교 정화니 사회 정의니 그렇게도 떠들어 대던 언론은 법난의 진상규명과 불교계의 피해에 관해 함구하고 있습니다.

무상각님!

저는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 그때 월주 스님을 위시한 큰 스님들께서 군부를 지지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의기양양하여 권력야욕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죄를 짓고도 당당했겠지요. 우리 불교계는 법난이라는 아픔이야 겪지 않았겠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지금보다 아주 많이 더 뒤로 물러나 있겠지요.

법난으로 인한 아픔은 씻을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하신 스님들로 인해 지금 이렇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방면에서 선진국의 반열로 들어서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처님께 고작 내 한 몸 편케 해달라고 기도하며 아무 힘도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주변의 불교 신도들에게 법난의 홈페이지를 통해 동영상을 보도록 하렵니다. 그 동영상과 기사를 접한 신도들은 다시 주변의 신도에게 동영상을 보도록 권하면서 법난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불교계가 당한 고통을 불자들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기도가 모여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그날까지 마음을 함께 한다면 떠나간 100만 신도가 200만이 되어 돌아 올 수 있을 겁니다.

잊혀진 역사는 죽은 것입니다.

진실이 감추어진 역사는 추한 것입니다.

불의를 보고 외면을 하는 것은 참된 역사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자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욕의 역사를 간직한 불교계를 위해 무상각님과 저 같은 자의 미력이나마 모아져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프다고 덮고 모른 체 한다면 질곡의 역사는 되풀이 되게 마련입니다.

불교계의 큰 어른들께서 이러한 역사를 바로 잡으시겠지만 우리 불자들도 10. 27법난을 생생히 기억하고 진상이 규명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기도하여야합니다. 미약하기 그지없는 촛불의 힘이 모여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는 것을 우리 모두 보지 않았습니까. 우리 불자들도 힘을 모아야합니다. 촛불이라도 들고 종로구 견지동 45번지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진상 규명을 위해 힘쓰시는 스님들과 관계자들의 노고에 목청껏 응원하여야 합니다.

선거철만 되면 전국 사찰을 찾아와 고개를 숙이는 정치인들에게 우리 불자의 단합된 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법난의 피해에 함구하고 있는 언론을 깨워야합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진실 된 사과를 받아내고 오욕의 불교에서 중흥의 불교로 바뀔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무상각님!

아주 많이 더운 날이지만 우리 이번 주말에 조계사를 함께 가보지 않으렵니까. 견지동 45번지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가지 않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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