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장려] 법난의 진실과 치유의 길 - 김화순 > 산문

제2회 10·27법난 문예공모전

2018.06.15(금) - 2018.09.07(금)

산문

산문

제2회 [장려] 법난의 진실과 치유의 길 - 김화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0-10 18:03 조회39회 댓글0건

본문

 

법난의 진실과 치유의 길

김화순

 

세월이 지났다 해서 부처님을 깔보고 수행자를 능멸한 법난을 그냥 묻어둘 수만은 없다. 법난에 대한 진실을 글을 써 여러 사람에 알리고 옹친 매듭을 풀어야 한다. 그런 결심을 하고 절간에 드나들자니 여간 마음이 심란한 것이 아니다. 오늘도 새벽 3시가 넘어 일주문을 들어서며 두 손을 모으고 부처님을 향해 절했다. 그리고 법난의 진실을 밝히고 그 치유의 길을 찾으려니 마냥 가슴이 두근거린다. 30년 빠짐없는 새벽기도에 내공이 쌓였을만한데도 불경이 입에서만 달막거리고 스님의 목탁소리는 아득히 멀게 들린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국가권력에 의해 민간인이 학살되거나 인권이 탄압받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중 광주민주화운동은 군부권력의 군화 발에 짓밟힌 사건이었다. 이는 민초들이 항거한 궐기였기에 민주주의의 초석이었다고 40여년이 지난 지금 빛을 발하고 있다. 이에 반해 아직도 어두운 그늘에 가려 햇빛을 받지 못하고 남아있는 사건이 있으니 바로 1980년에 발생한 10.27 법난이다. 10.27법난은 광주민주화운동처럼 군부정권의 총칼 아래 짓밟힌 종교탄압이었으니 헌정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다. 광주민주화운동 역시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었듯, 10.27법난에도 수많은 수행자가 신군부의 폭력에 의해 고통을 받았기에 불자로써 그 과정을 밝히고 그 주동자에 책임을 묻고자 한다.

80년 법난 당시 신군부의 지도자들은 불자들이 존경하는 수행자를 강제 연행해 육두문자를 써가며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고문까지 자행했다. 광주를 짓밟은 총칼의 압박에 속세의 중생들은 항거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수행자는 신군부의 총과 칼에 대항하지 못하고 오직 인내로써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 10월 27일 신군부 측은 불교계를 정화한다는 구실로 스님은 물론 불교 관련자 2000여 명을 강제로 연행하고 수사했다. 그것도 모자라 불순분자를 검거한다며 군경 합동병력 3만2000여명을 동원해 전국 사찰과 암자 5731곳을 수색했다. 어떤 스님은 잠결에 연행되었고, 어떤 스님은 새벽 예불 중 끌려갔다. 구속영장도 없이 스님을 연행해 폭행과 고문을 일삼았으니 경천동지할 일이다. 그런 난리 속에서 스님 중 일부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전대미문의 수모를 당했으니 수행자에게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특히 월정사에 계시던 원행 스님의 증언에 의하면 군인들은 스님들을 대공 분실로 끌고 가 발길질과 몽둥이질을 해댔으니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또한 쇠몽둥이로 가녀린 스님들의 몸뚱이를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내려쳤으니 시멘트 바닥에 피가 낭자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의 죄를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스님들을 거꾸로 매달고 고춧가루를 퍼 넣는 고문을 했다고 한다. 거꾸로 매달고 발바닥을 내리치는 등 가지가지 고문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또 혜성스님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현재까지도 거동까지 불편하니 어찌 그들의 죄를 다 열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몸이 불편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리를 저지른 승려로 낙인찍혀진 것이 더 아픔으로 남았으니 신군부의 죄를 무엇으로 물어야 할지 두 주먹만 불끈 쥘 뿐이다. 어떤 스님은 부정축재자로 몰렸고, 어떤 스님은 간첩으로 몰렸고, 어떤 스님은 사회부량자로 몰려 삼청교육대로 끌려갔으니 1600년 불교역사에 가장 치욕적인 날이라고 할 수 있다.

부정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자신들의 더러운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 어떤 징계의 모델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그 대상이 불교계였고 사회정화를 시킨다는 명분으로 종교 길들이기로 시작된 것이 바로 10.27 법난이다. 그동안 국민의 신망을 받던 호국불교가 이처럼 신군부의 탄압을 받게 된 것은 아마 교세의 지역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신교는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서방인의 종교이고, 가톨릭은 교황청을 중심으로 기반이 튼튼하기에 이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동양에 국한되어 있어 억지로 죄를 만들어도 말썽이 적고, 세계적 네트워크도 구축되지 못했으니 신군부의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했으리라. 그렇게 미리 짠 각본대로 불교계를 정화한다며 권력이 빼어든 총칼에 감히 누가 덤벼들 수 있었겠는가?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이리떼 같은 신군부의 군화 발은 최소한의 예의도 잊은 채 한국 불교계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봉암사까지 들이닥쳤으니 그야말로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불온세력을 검거한다는 명목 하에 명산대찰의 법당에서 스님들을 끌어내어 간첩으로 몰았으니 천인공노할 만행이었다. 증거나 증인도 없었다. 마음에 안 드는 스님을 사실의 왜곡과 강압으로 엮으면 간첩이 되어 감옥에 갇혔고. 또는 부랑자가 되어 삼청교육대로 끌려갔으며, 부정축재자로 몰려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몇 년 전 촛불집회 때 회자되었던 ‘이게 나라인가?’ 라는 문장은 1980년의 법난이 발생했을 때 이미 생성되었는지도 모른다. 언론마저 통제받았던 시대였으니 법난은 신군부가 만들어낸 거짓이라고 신문에 쓸 수도 없었다. 방송에서 말할 수도 없었다. 이처럼 언론 역시 신군부의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었으니 그야말로 암흑의 시대였다. 그러니 불교 신도들은 언론의 거짓 발표를 그대로 믿었고 이에 실망한 신도 100만여 명이 불교를 떠나고 말았다. 타 종교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 며 손가락질을 해댔으니 그때 불교계가 입은 치명상에 지금까지도 허덕이고 있으니 이를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권력을 가리켜 화무십일홍이라 하지 않던가? 그렇게 천인공노하게 일을 벌였던 주동자가 어느 날 갑자기 권력에서 멀어지더니 백담사에 몸을 의탁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는 참으로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교계는 그 뻔뻔한 사람을 감싸주며 부처님의 품을 내주었다. 아무리 자비가 근간을 이루는 종교가 불교라 하더라도 배알도 없는지 10.27법난의 괴수를 스님들은 가사와 장삼으로 덮어줬으니 말이다. 그런 보은을 입었음에도 당시의 최고 권력자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회고록을 통해 10,27 법난 사실을 몰랐다고 하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산속에서 목탁이나 두드리며 부처님 말씀을 외우고 실천하던 스님들이 무슨 큰돈을 쥐어봤다고 부정축재자로 몰아붙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또 속세를 떠나 산속에서 수도하는 스님들이 나라의 법을 얼마나 어겼기에 무법스님이라 낙인을 찍었는지 고개만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법으로 중생을 교화는 스님들이 이념과 사상을 어찌 안다고 간첩으로 몰아붙였는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탐·진·치를 내려놓고 부처님의 법을 전파하며 정진하는 스님들에 신군부가 덧씌웠던 죄를 지금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 있겠는가? 이런 천인공노할 종교탄압에 대해 정부에서는 이제라도 과거 신군부의 왜곡된 보도를 정정하여 진실을 알려야 한다. 1980년 10,27 법난은 불법으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들이 자신들의 죄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신군부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사과와 피해보상과 명예회복만이 부처님의 제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시간의 경과했고 스님들의 자비정신이 더해져 그들의 죄를 다스리기에는 늦었다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는 있다. 그렇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역사도, 종교도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가 존재하고 현재 위에 미래가 세워지는 것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의 원인이 투명하지 못하고 안개처럼 뿌옇다면 현재의 삶도 흐리고 미래 역시 밝다고 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불자들은 당시의 권력자들을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밝혀야 하고 그 책임을 물어 명예회복은 물론 보상까지 받아내는 길에 하나로 뭉쳐야 할 것이다.

1980년 법난 당시 나는 불자로서 절간에 드나들던 햇병아리 시절이었으니 상황을 파악하고도 분개할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도 이순이 넘었고 30년 이상을 새벽기도로 정진하여 몸과 마음을 닦았으니 당시의 최고 권력자들을 꾸짖을만한 내공이 쌓였다. 불법으로 정권을 잡은 당시의 신군부는 아마 집권의 정당성을 찾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이에 그들은 국민의 신망을 받는 종교지도자의 지지선언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가 엄연히 분리되어 있거늘 수행자의 최고 어른과 불자들이 신군부의 정권 찬탈에 지지를 보낼 수 있었겠는가? 1980년 4월 취임한 총무원장 월주 스님이 권력의 간섭을 배제한 자율적인 종단 운영과 종단의 자체 정화를 천명했다. 그러자 불교계는 신군부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결국 10·27 법난이 발생한 것이다.

종단과 불자들이 지금까지 법난의 진상규명과 사과 그리고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위해 매진했지만 강영훈 총리의 의례적 사과 외에는 뚜렷하게 진전된 일이 없다.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고, 다시는 종교가 정치에 의해 탄압받지 않도록 우리 불자들은 법난을기억하고 역사에 찢긴 아픈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 아직도 일반 국민은 그런 법난이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80년 10.27법난을 국민에게 소상하게 알려야 할 막중한 책임이 우리 불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스님들 역시 그날의 치욕적인 역사 하나하나가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두웠던 과거의 고통을 환하게 밝힌다는 차원에서 피해를 당한 스님들도 증언에 앞장서야 한다. 수행자라 해서 당했던 고통을 묻어두고 용서만 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신군부가 지은 죄를 부처님의 자비로 덮어주기에는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비록 지나간 일이지만 세상에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때 권력에 의해 종교가 짓밟히는 시대가 다시는 도래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한 시대를 살아오면서 민중 개개인이 치러야만 했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고통을 그냥 묻어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정확한 분석으로 원인을 찾아내고 냉철하게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 해결방법에는 당시 법난을 주도했던 군부의 수장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수행자에게는 국가가 나서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반성 없는 역사는 진화하지 못하고, 지나간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의 역사가 태어나기에, 바탕이 되는 역사는 깨끗하고 투명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나간 일이라도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사과하는 것만이 새 역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지나간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고 미래의 나침반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절간에 들어설 때마다 단 한 번도 경건한 마음을 버린 때가 없었다. 1년 365일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새벽 3시 사찰의 담 밑에 서서 스님의 도량석 마치기를 기다려 절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뒤꿈치를 들고 경내를 사뿐사뿐 걸어 대웅전에 들어서 부처님께 예를 표했다. 그런데 10.27법난에는 무례한 중생들이 군화발로 도량을 짓밟고 존경받아야 할 수행자의 목덜미를 잡아챘다하니 오늘 새벽 절간에 퍼진 공기에 당시 더러운 군화발의 땀내가 묻어오는 듯하다. 그런 땀 냄새가 다시는 신성한 도량에 퍼지지 않도록 우리 불자들은 우리의 도량과 수행자를 지켜야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반면 이제 우리의 불교도 강건해져야 하겠다. 수행자는 탐(貪)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아 부처님의 말씀을 온 누리에 펼쳐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포교활동을 통해 세계 속에 불교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동양에 국한된 불교가 아닌 세계적인 종교로 힘차게 도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종교의 몸집을 키우고 내면으로 부처님의 법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한마디로 어느 정권이나 어떤 권력자도 만만하게 볼 수 없도록 건강한 불교를 만들고 세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불교 종단의 지도자들도 속세의 정권과 연결되는 일 없이 순수한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나 수행자의 어른이 되고 불자들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 수행자들 역시 용맹정진 하여 6바라밀을 실천하고 탐·진·치를 버려 국민의 모법이 되어야 대중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수행자들이 존경을 받을 때 다시는 법난이라는 모욕적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부처님의 자비는 온 누리를 비출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불교는 호국불교와 대중 불교라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수행자와 불자들 스스로가 정화하고 용맹 정진할 때 불교는 국민의 신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해야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집단으로부터 사과와 보상도 받을 수 있으며 그들도 부처님 전에 향 사르며 용서를 빌 것이다. 글쓰기를 마치고 법당에 들어서는 오늘 새벽은 그래도 마음 한쪽이 가볍다. 법난의 울분을 토해낸 내 글이 중생의 심금을 울렸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래도 한쪽 가슴에 아직도 멍울이 남아있으니 아마 법난의 주동자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해서 그럴게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반성과 사과를 기다리며 부처님을 향한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주최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 주관총무원 사회부·불교신문
  • 후원문화체육관광부

COPYRIGHTⓒ 2018 10.27법난문예공모전. ALL RIGHTS RESERVED.

패밀리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