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장려] 아직도 끝나지 않은 - 이창헌 > 산문

제2회 10·27법난 문예공모전

2018.06.15(금) - 2018.09.0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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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장려] 아직도 끝나지 않은 - 이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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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0-10 18:06 조회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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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끝나지 않은 >

 

 이창헌

 

건강한 볕이다.

고운 결 따라 펼쳐진 자연의 빛깔이 길손의 걸음을 한껏 재촉케 만든다.

봄볕을 맞으며 찾은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의 첫 소회는 마치 투명한 해살 아래 흠뻑 젖은 영혼을 솔솔 말려 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품은 세월이 펼쳐 놓는 마곡사 풍경 속으로 마냥 빨려 들어가는 묘한 감정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런 고즈넉한 사찰의 역사 속에 너무나도 큰 아픔이 서려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마냥 행복해 할 수만은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1980년 10월 27일 새벽, 마곡사를 비롯한 전국 사찰에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지고만 것이다. 이른바 10.27법난이 터진 것이다. 과연 무엇을 위한 또 누구를 위한 불교정화였단 말인가!

10.27법난 관련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우홍근씨는 그 당시 학우스님이란 법명으로 수행하던 비구였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느닷없이 들이닥친 군홧발에 마곡사 경내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고, 우홍근씨도 이불 속에 있다 끌려 나와 마당으로 내팽개쳐졌다. 그런 와중에 허리를 크게 다쳐 결국 환속까지 하게 된 슬픈 사연을 접하곤 일순간 끌어 오르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본인이 이럴진대 당사자는 오죽할까! 또한 법난 당시 강화도 보문사 주지로 계셨던 정수 스님은 끝내 억울함과 답답함을 속 시원히 풀어내지 못하시고 열반에 들고 마셨다. 왜 이런 일들이 하필이면 불교계에서 일어난 것일까. 불교계 정화라는 구실로 무자비하게 자행된 당시 보안사령부 조사는 1600년 한국불교역사에 결코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오점을 남겼다. 문득 고개 들어 마곡사의 먼지 낀 서까래를 올려다봤다. 정성스런 마음들 위에 수십 번의 손길이 오갔을 마곡사의 내공이 새삼 느껴졌다. 마치 한 겹씩 내려놓았던 마음들이 다시 합일을 이루는 묵직한 느낌 같았다. 이런 성스런 무게감이 배인 사찰을 어찌 그처럼 유린할 수 있단 말인가. 정당성이 취약했던 신군부에겐 그들의 치적을 쌓기 위한 희생양이 꼭 필요했었는지 모른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와 방법이 너무도 지나쳐 보인다. 한낱 미물들도 고매한 스님들이 거처하시는 절간엔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않는 법이거늘 어찌 사람으로서 그런 무례를 범할 수 있단 말인가. 마치 군화를 신은 승냥이 떼 아니 그보다도 못한 아귀 떼들이 아니고서야 어찌 청정한 도량을 그토록 짓밟을 수 있는 것인지……. 하긴 마곡사 이곳만을 예 들어 말할까 마는 그래도 연이 닿아 직접 찾은 사찰이기에 더더욱 그날의 아픔들이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부족하지만 풍요롭게, 늘 넓은 마음으로 살아왔었을 승가를 일시에 온갖 부정과 축재의 소굴로 엮어 버린 당시 신군부의 만행에 다시 한 번 치를 떨게 된다.

‘정말로 아는 것이 없으면 교만해 진다’ <잡보장경>의 말씀처럼 인간이 아는 게 없을 땐 한없이 잔인해지고 또한 포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싶다. 인과의 이치를 모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이란 것은 있을진대 어찌 짐승보다 못한 어리석음을 범하고도 아직까지 뉘우칠 줄조차 모른단 말인가.

결과적으로 그날의 상처는 한국불교계에 크나큰 치명상을 안기고 말았다. 10.27법난으로 인해 수많은 신도들이 절을 떠나갔고 심지어 스님들조차 대거 환속하는 사태가 벌어지고만 것이다. 이로써 한국불교는 그 기상이 일시에 맥없이 꺾이고 말았다. 단지 신군부의 입안에서 살살 녹는 솜사탕이 되길 거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동영상에서 어느 학자가 언급했듯이 잘못된 사회에 대항하는 최후의 보루로써 저항진지라는 게 존재한다. 바로 그것은 언론, 학교, 종교이다. 하지만 당시의 언론은 이미 신군부의 군홧발 아래 놓여 있었다. 사전검열이란 서슬 퍼런 칼날 앞에 언론은 결국 침묵의 길을 선택하고 만다. 흔히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들조차도 신군부의 칼날 앞에선 무기력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제 오직 종교만이 남았다지만 그 중에서도 신군부와 결탁해 평탄한 길을 간 종교들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불교만은 고분고분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었다. 생각건대, 당시 스님들은 아마도 그것이 진정 깨어있는 참 불교의 모습이라 여겼기 때문이 아닐는지.

그 당시 한국불교계와 승가는 참으로 올곧고 바른 길을 선택해 나아간 것이었다. 오히려 칭찬 받아 마땅할진대 돌아온 건 무지막지한 탄압과 철퇴뿐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사부대중을 먼저 염려하신 정수 큰스님의 말씀이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먹먹케 만들었다. 당시의 아픔과 한을 채 풀지도 못하고 입적하신 정수스님께서 살아생전 남기신 말씀을 동영상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지 않았다면, 더욱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고 포교도 더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 단지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지!”

스님들도 분명 사람일진대, 어찌 원망과 미워하는 맘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우리네 스님들은 자신의 아픔과 억울함보다 10.27법난으로 상처 받았을 사부대중을 먼저 염려하신 듯했다. 또한 불제자로서의 사명에 충실치 못했음을 먼저 뉘우치시고 계신 듯해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려 왔다.

‘당시 신군부는 어찌 이런 분들을 사회악으로 취급했단 말인가!’ 만약 천벌이란 것이 있다면, 이럴 때 참으로 소용돼져야 옳지 않겠는가.

수사 이후 대부분의 스님들께선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 나셨지만, 그날의 슬픈 멍에로부터는 아직까지 온전히 풀려나지 못하시고 계신 것만 같다. 당시 언론들은 무죄를 받은 불교계에 대해 단 한 줄의 정정기사도 내보내지 않았다. 물론 이 또한 신군부의 사전검열에 의한 것이라지만 그래도 언론이 그래선 안 되는 게 아닌가.

마곡사 경내를 둘러보다 잠시 지친 다리를 쉬어가고자 요사채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툇마루와 건물기둥의 묵은 결들이 사찰의 유구한 전통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도 같았고 또 어찌 보면 굳센 지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바래고 퇴색된 빛깔들이 오히려 내겐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흔히 몸에 난 생채기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아물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맘의 상처는 다르다. 분명 감정적 상처는 사물이 아닌 인간에게서 받는 것이기에 이를 치유키 위해선 반드시 당사자 간의 용서와 화해란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10.27법난 이후 신군부 정권과 여타 다른 정권들조차도 여태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해본 적이 없다. 당연히 이를 전제로 이뤄져야할 화해와 용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실정이다. 솔직히 치료비 몇 푼으로 그날의 상처들을 말없이 덮으려고 한 10.27법난 진상규명위원회만이 몇 번의 생색을 내고 말았을 뿐이다. 이처럼 삭이지 못한 아픔들은 결국 소통의 길을 막게 해 잉여의 감정들을 다시금 되돌려 받게 만든다. 그렇게 오랜 시간들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언제 우리네 스님들이 병원비나 약값 따위를 대신 내달라고 했던가. 진정한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맘이 담기지 않은 물질에 연연치도 않으신다.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은 것만 같아 그저 답답해져 올 따름이다. 어쩌면 이젠 당시 피해를 입었던 스님들조차도 부식된 감정의 홀로서기가 삶의 이력이 돼버리신 건 아닌지. 그래서 더더욱 모질고 단단한 인내의 뿌리를 내리신 듯해 맘 한편이 자꾸만 아리어 온다. 설령 억울하고 삭이지 못한 감정들일지라도 걸음을 떼는 매순간마다 이를 잊고자 쉼 없이 수행을 거듭하셨을 스님들께 진정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남을 때리는 일은 자신을 때리는 일이다. 원수와 원수는 서로 만나니 남을 비방하는 일은 바로 스스로를 비방하는 일이요, 남에게 성내는 일은 자신에게 성내는 일이다’ 바로 <법집요송경>에 나오는 말씀이다. 아마도 우리네 스님들께선 이를 실천하시고자 이제껏 묵묵히 살아오신 것이 아닐까. 그 길고 오랜 세월들을 공부라 생각하시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젠 때가 이르렀다. 설사 우리네 스님들께서 상대를 용서하셨다고 해도 받을 것은 반드시 그걸 받게 되는 이에게로 되돌아가는 법이다. 이 또한 거역할 수 없는 인과의 법칙이기에 말이다.

10.27법난 그날의 아픔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더구나 진정으로 사과하는 이도 용서를 구하는 이도 없는 듯하다. 이에, 제대로 된 보상이나 명예회복 또한 원만하게 이뤄진 게 없다. 이런 상황을 계속해 모른 척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젠 천만의 불자들이 전면에 나설 차례가 된 것 같다. 그동안 큰 아픔을 간직하시고서도 늘 사부대중을 먼저 걱정해 오신 스님들께 보답할 기회가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축생보다 못한 존재다’ 구지 <대지도론>의 글귀를 언급치 않더라도 불자로서 지녀야할 양심에 호소하고자 한다. 한국불교 1600년 역사를 책임지고 이끌어 오신 스님들께 무슨 대단한 걸 해드리잔 게 아니다. 그분들의 숨겨진 아픔과 상처를 이젠 우리 불자들이 어루만져 드리고 보살펴 드리자는 것이다.

툇마루에 걸터앉은 채 처마끝선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겨 봤다. 강물은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평화의 유속을 늘 유지할 줄 안다. 마치 저 처마의 단아한 곡선의 흐름처럼 말이다. 이를 바라다보고 있는 본인 또한 삶의 얼룩진 무늬가 점차 옅어지면서 한결 유해지고, 욕심마저 내려놓게 되는 걸 느꼈다. 문득 맞은편 쪽으로 길게 이어진 흙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저 길 어디쯤 화해와 상생의 멋진 모습이 우릴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길이란 본래 보이는 것과는 달리 직접 걸어가 봐야만 만날 수 있고 또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런 까닭에 희망찬 내일의 길을 맘속 깊이 되새기고 또한 꿈꿔 보고자 한다. 더불어 하루빨리 진정한 소통의 장도 마련돼지길 소원해 본다.

소통, 그것은 교감 이상의 흡입력으로 감정의 부유물까지도 걸러주는 힘이 있는 듯하다. 이런 소통을 통한 감정의 다이어트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덧 마곡사 전각 너머로 하루해가 저물고 있다. 진하게 타들어가는 서녘 빛이 참으로 곱기만 하다.

해살이 저무는 이 시간, 노을의 잔영이 마곡사 절간에 내려앉자 그와 동시에 이제껏 생의 터널 속에 옭아매진 갖가지 사연들이 다시금 앞 다퉈 얘기들을 풀어내는 것만 같다. 마치 얼룩진 과거의 상처들이 풀어지고 또 치유돼지면서 점차 감정의 다이어트를 하듯이 말이다.

비우고 내려놓는 자유를 통한 진정한 사과와 화해가 이뤄질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고샅길로 이어진 전각 따라 땅거미가 짙게 깔리면서 시간의 틈새가 조금씩 전해져 왔다. 그 틈새로 서서히 소멸돼져 가는 시공의 아름다움이여!

10.27법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날의 상처들 또한 저물어가는 저 해와 타들어가는 시공의 아름다움 속에 온전히 녹아들어지길 부처님 전에 기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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