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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10·27법난 문예공모전

2018.06.15(금) - 2018.09.0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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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장려] 모든 화해는, 진실에서부터 시작한다. - 남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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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2-08 11:45 조회2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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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화해는, 진실에서부터 시작한다.

남윤영

 

⟦법당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온다. 법당 주변에 피어난 동백꽃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사이, 사람들은 앞뜰로 모여 들었다. 방금 전까지 법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던 가족이었다. 집안의 어른부터 자손들이 모두 한데 모인 자리에서는 정갈하면서도 엄숙하고 정성이 깃들어있던 제사를 감사하고 감탄하는 대화들이 잠시 오고 갔다.

“주지스님과 보살님께서 정성을 다해 제사의식을 치러주신 덕에, 우리는 마음으로 정성을 더할 수가 있었구나.”

영가의 늙은 아내가 천천히 말을 하면서, 법당 주위를 휘 둘러 보았다. 흔히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사찰의 모습이 그녀의 눈동자에 한 가득 맺혔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 규모의 사찰이라면, 주지 스님의 재력은 엄청나겠는걸요?”

무조건 경계하고 의심하기를 좋아하는 둘째 사위였다.

앞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둘째 사위에게로 쏠렸다.

“언제였던가? 예전에 그랬던 적 있었잖아요. 조계종 스님들을 데려다가 조사해보니까 횡령으로 재산을 축재했던 게 밝혀졌던 것 말입니다.”

“아, 나도 기억이 나요. 그때 한참 ‘목탁재벌’이라는 말까지 나왔잖아요.”

셋째 아들이 둘째 사위의 말에 맞장구를 치자,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체적인 증거나 타당한 논리도 없이 둘째 사위와 셋째 아들의 말에 동조하는 말들. 그들의 말에 부정하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그 소리에서도 정확하고 객관적인 근거는 빠져 있었다.

그 사이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른들을 빤히 쳐다본다. 순수한 아이들의 머릿속에 ‘횡령’, ‘폭력’, ‘퇴폐’, ‘목탁재벌’이라는 단어들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한다.

법당 앞을 돌아나가던 한껏 맑은 공기는 그들이 서있는 앞뜰에 이르러 갈 길을 잃는다. 아, 숨이 막힌다.⟧

 

위의 글은 사찰에 대한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에 대해 간략하게 표현해 본 글입니다. 인물과 배경은 달라도 이와 같은 스토리는 실제로 우리의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 대중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해서, 사찰에 대한 잘못된 사실을 거리낌 없이 내뱉습니다. 심지어는 잘못된 사실들로부터 파생된 말들이 또 다른 속설이 되어 떠돌아다니기까지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된 사실과 그로부터 파생된 거짓은, 대중들에게 불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잘못된 사실들은 무엇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모든 것은 37년 전이었던 1980년 10월 27일에 일어난 사건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 당시 정치권력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1980년 10월 불교계 정화 차원으로 전국의 조계종 사찰과 암자를 수색했습니다. 포고령 위반 수배자, 불순분자, 간첩을 검거한다며 군경 합동 병력 3만 여명을 동원해서 주지스님, 재무, 총무 등을 강제로 연행해 갔습니다. 미명의 어둠 속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법당을 무단히 틈입해서 무차별적으로 스님들을 연행해 간 것입니다.

사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행된 스님들은 승복 대신 죄수복을 입고 구금된 채 가혹한 고문까지 받았습니다. 적게는 며칠에서부터 길게는 한 달 동안 이루어진 고문은 끔직했습니다. 군화발에 차여서 탈장이 되고, 알몸으로 고통을 받는 등 온갖 폭행과 협박이 가해지고 거짓 자백을 강요받았습니다.

한 달여 뒤, 계엄사령부는 수사결과 발표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부정‧부패를 스님들에게 덮어씌우면서 10명의 스님과 8명의 스님을 구속시켰습니다. 3명의 스님을 삼청 교육대에 보냈으며, 24명의 스님을 집단 연금하고 강제 참선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13명의 스님을 강제로 환속시키면서, 불교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허위‧조작 발표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10‧27 법난’ 사건입니다. 10‧27 법난의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 병이 들거나 병이 악화되어 목숨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억울함은 그대로 묻혀 버린 채, 불교계는 퇴폐 ‧횡령‧ 폭력 등의 온상처럼 여겨지면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입었습니다.

수많은 신도들이 몸과 마음을 담았던 신앙으로부터 떠났습니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조계종에 대한 잘못된 사실과 왜곡된 시선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불교에 대한 거부감을 갖거나, 불교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건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해 보아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불교계의 푸념이자 변명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교계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했던, 10‧27 법난. 그 사건의 전모가 불교계에 대한 탄압이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10‧27 법난이 일어나기 전, 신군부는 군사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목적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계는 기대와는 다르게, 신군부에 협조적이지 않았고, 결국 불교계는 정권의 눈 밖에 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10‧27 법난은, 불교계가 마음에 안 들어서 휘두른 야만적인 권력의 속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27 법난이 일어난 다음 해부터 불교계에서는 진실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사건의 전모는 드러났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0‧27 법난이 발생한 뒤로 3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사건에 대한 진실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가나 거대 권력에 의해 유린된 많은 사건들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기도 했지만, 10‧27 법난의 진실만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누명을 쓴 피해자들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외면하면서, 그들과 그들이 몸담았던 세계가 굴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피해의 대상이 종교와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삶에서 겪은 좌절과 고통을 종교적인 차원에서 치유하도록 내모는 것이 옳을까요? 따뜻한 봄날 쌓인 눈이 저절로 녹듯, 그들의 피해가 그들의 마음속에서 저절로 녹아내리도록 방관해야 할까요? 능욕을 참아내는 것만이 능사일까요?

10‧27 법난을 바라보는 시각은 심각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법은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권력에 의해 이루어진 폭력은 또 다른 형태로 누구에게든 들이닥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에서 비롯되는 권력, 거대 단체에서 비롯되는 권력, 서열에서 비롯되는 권력 등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권력들이 존재합니다. 그 누구라도 어떠한 권력에 의해 육체적‧정신적 폭압을 당할 수가 있고, 거짓에 의해 억울하게 낙인이 찍힌 채로 고통당할 수가 있습니다. 당장 나 자신이나 내 삶의 영역이 언제라도 희생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그 누구도 권력이 휘두르는 말도 안 되는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10‧27 법난은 아직까지도 사건의 주요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책임자도 감추어져 있습니다. 사건이 그대로 묻히기 전에, 10‧27 법난의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건의 진실을 명확하게 파악하려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가해자를 찾아내어 가슴 속에 서려진 원한을 앙갚음하려는 것이 목적일까요? 아닙니다. 불교가 지닌 커다란 종교적 힘은, 자애로운 마음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불교가 해온 중추적 역할 중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10‧27 법난에 대한 진실규명은,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자 함이 목적입니다. 더 나아가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과의 화해로 귀결시키기 위함이 목적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불교계는 10‧27 법난을 알리고자, 외롭게 분투해왔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10‧27 법난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화해는 진실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사회는 갈등‧반목‧ 혼란을 상생으로 승화시켜,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37년 동안 버려진 그 집은 아주 낡고 초라했다. 콧잔등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주저앉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 집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온몸으로 그 집을 떠받치는 스님들이 있어서였다.

그 집의 진실을 밝히려는 스님들의 날들이 37년을 지내는 동안, 어느 스님은 늙고 병이 들어 소리 없이 부처님 곁으로 떠났다. 떠난 자리는 그 집이 허물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또 다른 스님들이 와서 메워주었다.

간혹 집 위로 희미하게 밝은 빛이 비춰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낡고 초라했던 그 집은 생기를 담아내는 듯 했다.

몇 년 후, 어느 날이었다.

그 집의 어느 방 깊은 곳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랫동안 굳게 잠겨있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소리와 함께 어두운 구석에 숨어있던 누군가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어. 집안을 비추는 빛이 너무 눈이 부셔서.”

슬며시 고개를 드는 그의 음침한 얼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집이 무너져 내리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그는 실망한 듯, 그 집에게 말을 내뱉었다.

“이제 나를 어떻게 할 거지? 나의 손과 발로 너를 마구 쳐대던 것처럼 나를 칠 것인가? 아니면 몽둥이로 너의 지붕을 부수던 것처럼 나를 부셔버릴 참인가?”

격하게 말하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는 험악하고 두꺼운 자신의 손과 발을 쳐다보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였다. 햇빛을 머금어왔던 그 집이 따뜻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분노와 두려움에 가득 차있던 그에게 순식간에 따뜻한 기운이 전해졌다. 따뜻한 기운에 감싸인 그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 집에서 자애롭고 포근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앙갚음이 아니야.”

그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지금처럼 이렇게 나타나서 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그게 내가 바라던 거야.”

그는 뒷걸음질을 멈추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오래된 그 집의 냄새가 그의 콧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쌉싸름하고도 끈적이는 상처의 냄새였다.

“나의 아픔과 상처가 나아질 수 있도록, 지금까지 너를 기다렸어. 밖에서 나를 받쳐주는 스님들과 햇살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무너졌겠지만.”

잠시 후 그 집은 다시 말을 이었다.

“너는 그냥 너의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그래야 너와 화해를 할 수가 있으니까.”

 

  

 그 집의 말을 듣다말고, 험악하던 남자의 얼굴에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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