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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10·27법난 문예공모전

2018.06.15(금) - 2018.09.0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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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장려] 10.27학난 - 박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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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2-08 11:49 조회1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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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학난 

박태성

 

"스님, 저희 학교에서 벌어진 인권 탄압은 불교계 최대 수난사인 10.27법난과 유사합니다."

저는 무릎을 꿇어 앉은 채로 제 앞에서 눈을 감고 정좌를 한 스님께 호소하듯 말합니다.

"전두환 정권이 불교 탄압의 명분으로 삼았던 불교계의 분쟁도, 눈엣가시로 여겼던 불교계의 행적도, 그리고 불교계가 오랜 갈등을 극복하고 극적으로 타협한 것 등이 유사합니다."

스님은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 아무 말씀도 없으십니다. 저는 아랑곳 않고 다시 입을 엽니다. 스님이 움직여주길 바라며, 희망이 되길 바라며, 이 때까지의 일을 스님께 상세히 설명해 봅니다.

당시의 저희 학교,OO고등학교는 학생회와 일반 학생들 간의 학교 제도 개선 여부를 두고 벌어진 분쟁으로 살벌했습니다. 분쟁은 여러해살이풀마냥 해가 바뀌더라도, 학생회 간부가 바뀌더라도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학생회장이 된 후론 극적으로 분쟁이 잦아들었습니다.

저 이전의 학생회는 일반 학생들에게 허수아비라는 오명이 붙었습니다, 학생회에선 학생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았고 학생을 위한다면서 진정 위하는 대상이 누군지 모호한데도 개선하려는 노력도 없어 저도 통감하고 있던 바이죠. 그래서 제가 학생회장이 된 후론 모든 것을 변혁시켜 허수아비란 오명을 버리고자 했습니다. 학생과 소통했습니다. 학생 생각은 해 주지 않고 혹사시키는 학교 제도는 개선 또는 폐지하고자 학생회 회의 안건으로 정하고 시위를 준비했습니다.

[강제 야간자율학습은 학생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망쳐 놓는 것이다!]

[휴대전화 미소지 학교생활은 등하교 시 혹시 모를 위험에 학생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강제 야자, 휴대전화 미소지 학교생활로 인한 피해 학생이 실제로 있습니다! 피해 학생의 실명을 공개할 순 없으나 여기 피해 학생의 진술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습니다! 다들 경청해 주세요!!"

저는 저와 뜻을 같이 하는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학교 제도의 그릇된 점을 지적하는 시위를 이어나갔습니다. 몇몇 학생은 그저 지나갔으나 이내 두셋의 학생들이 멈추어 유심히 보더니 어느새 군중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군중을 휘휘 둘러본 다음,  테이프를 카세트에 넣고 재생했습니다.

처음 나온 소리는 그가 변조 목소리로 울먹이며 겨우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때 그는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고역이었던 듯 했는데 우리가 마치 그에게 죄를 짓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말하고자 했던 용기를 믿고 꾹 참기로 했습니다. 그는 마냥 울먹일 수만은 없단 걸 알았는지 눈물을 소매로 훔친 후 다부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야자를 9시까지 다 마치고 집에 밤늦게 도착하니 가족이 집 어디에도 없었다고, 지적 장애인 1급으로 언제나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만 자신에게 한없이 맑은 웃음과 사랑을 주던 부모님도, 장난기가 많다 못 해 넘칠 정도지만 그러하기에 활력소가 되기도 하는 다섯 살 배기 동생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불길함이 확 엄습해 와 학교에 들고 가지 못 했던 폰을 찾아 부모님께 전화를 하기 위해 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인 것은-8~9시 경 엄마아빠로부터 온 수십, 수백 통의 전화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도와주던 도우미 아줌마로부터 온 동생이 심각한 화상을 입어 OO병원으로 이송하였으니 급히 오라는 것과 상황이 너무 급박하여 차마 학교에 연락을 넣을 정신이 없었다는 상황 설명의 문자.

이후, 동생이 이송된 병원에 가까스로 도착한 그가 들은 전후 사정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날은 도우미 아줌마가 오시기로 했던 날이라 부모님과 동생이 평소엔 혼자 하기 어려워 잘 하지 못 했던 목욕을 하기로 했답니다. 부모님이 먼저 목욕을 다 하시고 난 후, 동생이 목욕할 차례에 아줌마께서 어떤 전화를 받더니 급한 일이 생겨 잠시 나갔다 오니 기다려 달라고 하며 나갔다고 했답니다. 그러나 일이십 분이 지나도록, 동생이 타월만 걸친 채 들어가 있는 온수가 식도록, 동생이 조금씩 떨기 시작할 때까지 아줌마가 돌아오지 않자 부모님께선 이대로는 안 되니 직접 씻기자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은 대야에 온수를 받아 동생의 등에서부터 시작해 천천히 적셔나가려 했답니다, 하지만 그 때, 동생은 소리를 지르며 화장실을 뛰쳐나가서는 집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그는, 부모님이 적당한 온도인지 손을 담가 보는 걸 깜빡하고 너무 뜨거운 물을 들이부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후, 일이십 분이 더 지나고 아줌마가 들어오고 나서야 겨우 동생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합니다. 그의 진술은 이걸로 끝났지만, 그는 마지막에 말 몇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부모님은 동생이 화상을 입고 방방 뛰어다닐 때부터 제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고 해요, 저는 학교에 있었고 폰은 집에 있었지만 부모님은 너무 놀라신 상태라 그걸 인지하기 힘드신 상태였고 동생의 울음소리에 제 벨소리는 무참히 묻혔죠. 부모님은 저말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할 생각은 들지 않더래요. 그렇다면, 적어도 제가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더라면, 학교에서 휴대전화 소지를 허용해 줬더라면 제가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수습했을 텐데..내가, 내가 전화만 받을 수 있었더라면....아니, 차라리 강제 야자가 없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게 놔두지도 않았을 텐데...."

녹음테이프는 그의 울분으로 끝났고, 시위는 전염된 울분과 변이된 격분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시위 이후로 선생님들의 눈총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후..저는 일단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이야길 하느라 한 쪽으로 치우쳤던 상체를 고쳐 앉고, 격앙된 감정을 갈무리합니다. 목이 따갑다고 생각될  때쯤, 스님께서 마침 보리차를 내 주셔서 목을 축이고 다시 입을 엽니다.

"이번에 말씀드릴 닮은꼴은 전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던 국보위에서 합동수사단에 내린 불교계에 관한 비밀 수사 지시, 당시 불교계가 비리온상이었다고 거짓 발표해 언론플레이한 정부의 근거를 뒷받침하는 어느 승려의 조작된 투서이자 밀고, 전 대통령이 10월 27일에 벌인 불교 탄압 사건들의 닮은꼴입니다."

저는 남아 있던 보리차로 목을 축이곤 다시 스님께 상세히 설명해 드립니다.

저는 선생님들 일부에게 눈총이란 눈총은 받아가며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저는 시위하던 그 날처럼 무엇에도 아랑곳 않고 나아갔습니다. 그렇기에 친구들은 물론이고 저한테 눈총을 주지 않던 선생님들 또한 저를 아껴주었습니다, 정말 행복했죠. 하지만 그 행복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행복이란 걸 전 알지 못 했습니다.

10월 27일, 그래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10월 27일에, 저와 학생회 임원 몇몇이 방송으로 호출되어 교무실 옆 특별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으로 향하던 중, 복도에 어느 벽보 같은 게 붙여져 있었고 학생 서넛이 그걸 보고 있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학생회 임원들도 궁금한 차에 그것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벽보에는 이름은 밝히지 않고 학년과 성만 밝힌 채로 벽보에 언급된 그들이 학교 폭력, 금품 갈취 등의 행위로 징계처분을 내린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래에는-

"뭐야...이게? 이거 내 얼굴 아냐?"

그곳엔 징계처분을 받았다는 아이들의 얼굴 사진인 듯, 눈만을 모자이크한 채로 사진을 올려놨는데 아무리 봐도 그것들은 지금 방송으로 호출된 아이들의 얼굴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불길함이 엄습해 왔지만 애써 그 불길함을 없애며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특별실로 다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특별실에 2학년 부장 선생님이 들어오시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들어 오시자마자 하신 말씀은-

"마, 이 정신 나간 새끼들아!!  공부 잘 한다고 봐줬더니 그딴 쓰레기짓거리나 하냐?! 공부 잘한다고 봐주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니들은 공개적으로 망신살 한 번 뻗쳐봐야 돼."

"그 말씀은 그럼 그 복도에 있던 징계 벽보는.."

"그래, 니들 얘기다, 쓰레기 새끼들아!"

폭언과 욕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노발대발해서 소리를 지르며 몇 장의 종이를 손에 꽉 쥐고 계셨습니다.

"선생님, 저..도통 뭘 얘기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자세히 좀.."

"몰라? 모른다고? 아~모르는구나, 그렇구나. 학교에서 한 짓은 동네방네 다 까발리고 다니면서 네가 한 그 쓰레기 짓은 다 까먹은 거구나.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선생님은 마지막 말에서 마디마디에 강세를 넣을 때마다 제 가슴을 툭툭 치며 뒤로 미시더니 마지막엔 손에 쥐고 계시던 종이뭉치를 제 얼굴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엉거주춤 앉아 주워든 종이에는-

[20XX.XX.XX 오후 X시. 학생회장 보현 학생이 학생회 임원 김XX 군, 손XX 군, 박XX 군, 유XX 군, 최XX 군, 윤XX 군과 같이 학교 뒤뜰에서 저희들을 마구잡이로 때리고 금품을 갈취했습니다. 그놈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일 뿐이에요.]

[20XX.XX.XX. 오전 X시. 학생회장이 저희들에게 찾아와 시위를 구경하는 군중 속에서 군중을 선동해 흥분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저희 가족들을 모두 찾아 죽여 버린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리고 놈들은 시위에 나온 피해 사례도 조작했습니다, 제가 봤습니다. 놈들은 자신의 평가를 향상시키기 위해 시위와 군중의 마음을 이용했습니다.]

이후로 몇 개의 쪽지가 더 있었으나 비슷한 내용의, 학생회가 학교 폭력을 저질렀단 내용이라 생략토록 하겠습니다. 어쨋든, 쪽지를 다 읽은 후 저는 어처구니없단 표정으로 절박하게 외쳤습니다.

"선생님! 이건 모함입니다, 저를 비롯해 여기 언급된 아이들은 이러한 짓을 할 이유도, 한 기억도 없습니다!"

"이유도, 기억도 없다고?"

선생님께서 제 말을 반복하시며 몸을 돌리시자 저는 수긍하며 모함임을 증명하려 입을 다시 열었습니다. 그러나 몸을 돌린 선생님의 얼굴은 여전히 붉으락푸르락했습니다. 선생님은 품에서 몇 장의 종이를 더 꺼내 제게 펼쳐 보입니다.

"이래도? 이래도 기억이 안 나냐?"

종이는 사진으로, 거기엔 저를 비롯해 쪽지에 언급된 아이들이 학생 네댓 명을 둘러싸고 폭행하는 사진이었습니다. 그 외엔 제가 누군가를 협박하는 듯한 제스처로 녹음기를 들고 있는 아이를 위협하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것이-그래요, 마치 아마추어가 조작한 사진처럼 말이죠.

"선생님! 이건 마치..."

"시끄러!! 쓰레기 같은 것들이, 닥쳐!"

이후로, 선생님의 폭언은 계속되었고 선생님은 중간 중간에 아이들의 따귀를 몇 대 올려붙이기까지 하셨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은 한참 화를 내시다가 씩씩거리며 특별실을 나가셨습니다. 아이들도 얼얼한 뺨을 부여잡고 하나둘 나갔습니다. 저는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때, 제 뒤로 특별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까불랬어? 적당히 까불어야 재롱도 되고 그러는 건데, 쯧. 지 잘났다고 잘난 척 하고 관심이란 관심은 다 받더니..좋은 꼴이다."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말에 저는 얼굴색이 창백해지며 급하게 뒤로 돌아봤습니다. 하지만, 저의 반응이 느렸던 건지, 그가 재빠르게 움직인 건지 그는 이미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상태였습니다.

그가 그런 말을 한 이유도, 무엇도 알아내지 못 했지만 저는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저를 모함한 주범이란 것을요. 하지만, 그런들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의 모습도 보지 못 하고 놓쳐버려 아는 거라곤 목소리뿐인데 목소리 갖곤 제대로 된 증거도 되지 않으니..그렇게 저는 그저 한숨을 내쉬며 특별실을 나오려던 차, 종이 한 장이 바람에 의해

특별실 안에서 밖으로 날려 나옵니다.

"이건...부장 선생님이 일정 메모로 사용하시던 메모지 같은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날려 온 메모지를 주워들어 살피던 저의 눈에 보인 것은-

[1. 학생회장 손 보현 학생 비롯 학생회 임원 예의주시.

2. 학생회장 손 보현은 올바르게 정해진 학교 제도에 대항하는 위험한 반동분자.

3. 손 보현 학생회장의 비리를 고발한다는 학생과 만나볼 것.

4. 정기적으로 교장 선생님께 손 보현 학생회장의 일거수일투족 보고.]

저는 몇 번이나 봐 왔기에 알았습니다, 선생님이 항상 고집하시던 메모지를, 개성 넘치는 필체를-저는 메모지를 조용히 접어 제 와이셔츠 상의 주머니에 고이 모셔두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이 종이가 필요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두 번째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칼칼해진 목을 축이기 위해 보리차를 컵에 따라 마시고는 스님을 다시 응시하며 말씀 드립니다.

"실제로 그 종이는 필요한 날이 찾아왔었습니다. 그것도 수 일 내로 말이죠."

스님은 어느 샌가 감고 계시던 눈을 슬며시 뜬 채로 제 이야기를 경청하고 계십니다. 저는 스님께서 저를 비롯한 학생들의 힘이 되어줄지 모른단 생각에 힘입어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마지막 이야기를 말씀 드리기 위한 포석을 준비합니다.

"이번 이야기이자 마지막 이야기의 닮은꼴은 전 두환 정권의 만행과 불교 탄압에 대항하는 여러 불교도들의 항의 시위, 법난이 발발하고 수년이 지난 후에야 강 영훈 국무총리가 한 책임 전가 등의 성의가 없는 사과문입니다."

저는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상기된 목소리로, 스님께선 그저 눈만을 살며시 뜬 채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학교에서 폭언과 욕설, 눈만 가린 얼굴 사진을 공개한 인권 탄압의 소동이 벌어진 후 더 큰 소동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신들 제 정신이야?! 조작된 학교 폭력 사태를 분별도 못 하고 곧이곧대로 믿어선 애들을 폭행하고 벽보로 얼굴까지 공개해서 애들을 모함해!? 그러고도 당신이 선생이야!"

"그래! 조작되기까지 한 걸 가지고 애들한테 왜 징계를 내리고 폭언에 폭행까지 일삼아!!"

'인권이 무시 받았던 학생들의 부모가 학교로 찾아와 한바탕 소동을 벌인 것이었습니다. 직접적으로 폭언을 했던 부장 선생님은 물론이고 여러 선생님들께서 학부모 한 분, 한 분을 붙잡고 진땀을 빼 가시며 부모님들을 진정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들 중 변명 같은 말만 하시는 분들은 전부 제게 눈총을 주던 선생님들이었고, 죄송하단 말만 연방 하시는 분들은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불같이 화를 내는 그들과 계속해서 변명만 내뱉는 그들을 보면 그 때 주웠던 메모지를 공개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변명도 없이 그저 죄송하다는 말과 머리를 조아리는 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지고 말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밝혀야 할 건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열불을 내시는 학부모님들께 천천히 다가갔었습니다.

"어머님, 저희가 잘못한 건 맞는데요. 그게 어쩔 수 없었던 게 증거가..어, 보현아?"

"저, 규영이 어머님이시죠? 제가 보여드릴 게 있는데 이 메모지를 좀.."

"응? 어, 어..뭐야, 이거.."

어머님과 선생님은 메모지를 보시더니 점점 얼굴이 붉어지거나 창백해져 갔었습니다. 두 분의 표정 변화에 몰려든 사람들 또한 어깨 너머로 메모지를 보다가 상황 파악이 되자 처음의 두 분 같은 표정이 되어갔었습니다.

"교장 나오라 그래...교장 나오라 그래!! 교장 어디 있어?!"

부모님들은 분을 이기지 못 하고 교장을 데리고 오라며 고래고래 소릴 질러댔고, 몇몇 분은 뒷목을 잡고 휘청거리기도 하셨었습니다. 그러자 그 때까지 뒤에서 엉거주춤 서 있던 학생들도 달려 나와 각자의 부모님을 진정시키기 시작했었습니다.

부모님들도 어차피 알고 계셨을 겁니다, 학교의 최종 결정권자는 교장이기에 이런 일이 교장의 승인 없이 이뤄지진 않았을 테니까요. 다만, 교직 생활을 십수년도 더 하셨을 교장이란 작자가 이런 일을 승인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셨던 것일 거라고 저는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그리 찾으시던 교장은 모종의 이유로 인해 부모님들이 제 풀에 지쳐 돌아가실 때까지 나오지 않으셨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전교생과 학부모들은 학교로부터 하나의 단체 문자를 받았다.

[OO고등학교 전교생 및 학부모 여러분께

먼저, 오늘 학부모님들이 찾으시는데도 바쁜 업무와 일정으로 인해 응대해드리지 못 한 점,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학부모님들께선 조작된 학교 폭력으로 아이들에게 징계를 내리고, 폭언을 일삼고 보란 듯이 얼굴을 공개해 인권을 탄압한 10월 27일의 사건으로 인하여 찾아오셨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뜻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증거 사진을 보았을 때 부자연스러움에 조작을 의심했지만 2학년 부장 선생님께서 저의 바쁜 업무를 고려하시고 대신 알아서 하겠다고 하셔서 저는 믿고 맡겼던 것이죠. 그 일은 저의 뜻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부장 선생님의 섣부른 독단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장 선생님의 일정 메모지에 학생회장 감시니, 학생회장의 언동을 교장한테 보고하니 하는 내용으로 문제가 많은 듯 한데 그것은 명백히 말하면 부적절 어휘의 사용에 이은 오인입니다.

저는 그저 손 보현 군에 대해 학생회장이라지만 학생의 신분으로 학교에 대항한 것이 영특하다고 잘 좀 지켜보라고 한 것과 종종 손 보현 군이 어떻게 지내는지에 관해 알려 달라 부탁한 건데 부장 선생님께서 그런 부적절한 어휘를 사용하셨고, 학부모님들이 그걸 보고 온전한 제 뜻으로 오인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질 때까지 모르고 놔 두어 죄송스러우나 제 뜻이 아닌 부장 선생님의 독단과 부적절 어휘 사용으로 벌어진 일이기에 학부모님들의 분노의 대상은 조금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 하더라도 저 또한 책임을 피해갈 순 없다 생각합니다. 그러하니 저는 자숙 30일, 주범인 부장 선생님은 근신 100일, 관계된 선생님들은 근신 50일로 처분을 결정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길.

OO고등학교장 김OO]

"정말이지...교장 선생님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치 않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회피했으며 그 일을 모른 척 했습니다..마치 전 대통령처럼, 사과문을 발표한 강 국무총리처럼."

저는 이를 갈며 마지막 말을 하는 것으로 마지막 이야기를 마칩니다. 스님은 어느새 살며시 정도가 아니라 눈을 완전히 뜨고 계셨고 무언가 골몰히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스님의 상념을 깨우면서도 희망이 되어달라 부탁을 하고자 스님하며 입을 뗍니다.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으셨으니 제가 왜 계속해서 우리 학교의 인권 탄압 사건이 10.27법난하고 유사하다 한 이유를 아시겠지요, 더욱이 스님께서는 우리 학교에 초빙되어 10.27법난에 대해 열띤 강의를 해 주신 분이니까요. 스님, 저희들을 도와주십시오. 스님께서도 10.27법난과 같은 사건은 막아야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이 적기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저는 마른 입술을 다시고 다시 한 번 정자세로 무릎을 꿇으며 입을 엽니다.

"스님, 이제 이 사건은 단순 인권 탄압 사건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10.27학난이라고 명명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스님께 말씀드리자 스님께선 그제야 결심이 서셨는지 입을 여십니다.

"자비를 베풀고 대화합으로 품으십시오."

"네?"

저는 스님의 의외의 대답에 벙찐 표정을 하며 되묻습니다.

"불교에서는 만물이 상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쟁은 상생을 방해하고 존재를 파멸로 이끄는 것. 그것을 막기 위해선 자비를 베풀어 이해하고 대화합으로 상생하는 겁니다. 손 보현 학생, 그가 아무리 극악무도할지라도 자비를 베풀고 대화합으로 품으려 한다면 분쟁이 아닌 상생의 길이 보일 것입니다."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럼, 이만 저는 일어나겠습니다."

저는 나가려는 스님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리려 하지만 스님은 빠르게 나가시고 방 안엔 저 혼자만 남습니다.

"하, 하하...그래요, 아직 남아있었네요. 10.27학난도, 닮은꼴도..10.27법난의 주범인 전 대통령을 자비와 대화합을 명분으로 어느 사찰에 은거토록 도와주고...상생은 무슨, 마음 하나가 완전히 갈가리 찢겨졌는데 상생한다고 붙여지는 것도 아니고...하하, 하하하...!"

저는 제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크게 웃습니다, 큰 물방울을 떨어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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