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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10·27법난 문예공모전

2018.06.15(금) - 2018.09.0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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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장려] 누가 응징(膺懲)을 받을 자인가? - 법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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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2-08 11:50 조회1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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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응징(膺懲)을 받을 자인가?

법념스님 

 

모두 곤히 잠든 새벽 2시. 탕탕거리며 대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누군지 몰라도 신도님의 경우 급한 일이 생기면 미리 전화를 주든가, 아니면 오더라도 한밤중이라 저렇게까지 하진 않을 터다. 무슨 큰일이 터졌나싶어 황급히 나가 문을 여니 중무장을 한 군인들 서너 명이 득달같이 들이닥친다. 뭐 이렇다하는 말도 없이 무조건 쳐들어와 법당부터 열어젖히더니 군화를 신은 채 성큼성큼 들어간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을 눈앞에서 당하니 너무 놀란 나머지 제지시키려는 말조차 입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정신을 차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부처님이 계신 법당에 구둣발로 들어오다니, 최소한 예의는 지켜주셔야지요. 군화를 벗고 다시 올라오세요.” 

“국가에서 수행하는 일에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우리는 당신들의 죄상을 조사하러 나온 사람입니다.”

죄라니,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며 수행한 일밖에 없거늘, 무슨 명목으로 잡으러 온 걸까. 힐끗 쳐다보는 군인의 눈초리가 쇠붙이 총신처럼 차고 날카롭다. 뭔 잔소리냐는 표정이다. 순간 아무 죄도 짓지 않았건만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스무 살 남짓한 새파란 놈이 사십을 바라보는 나를 아랫사람 내려다보듯 째려본다. 가택을 수색하라는 영장도 없이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주제에 큰소리마저 친다. 눈을 부라리며 말하는 꼬락서니가 가관이어서 어처구니가 없지만 무기를 소지한 군인 앞이라 어찌 할 방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도무지 전후사정을 알 도리가 없다. 전시(戰時)에 나가는 전사처럼 총을 어께에도 메고 허리춤에도 차고 서있으니 겁에 질려 다리가 덜덜 떨린다.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이가 딱딱 마주치고 머리카락까지 쭈뼛 섰다. 총을 들이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컸지만, 내 뒤에서 부처님이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에 두 다리에 온 힘을 주고 버티었다.

어릴 때 6·25 한국전쟁을 겪었기에 총에 대한 공포심이 남보다 예민한 편이다. 총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라는 걸 철들기 전부터 익히 알아 개머리판만 보아도 무서워했다. 전쟁후유증이 초등학교 때까지 남아있어 경찰서 앞에 총을 메고 서있는 순경만 보고도 놀라 빙빙 둘러 다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을 보고도 놀란다.’고 하더니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런 나쁜 기억이 수 십 년이 지났건만 다시 떠오른다. 또 하나의 다른 전쟁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하는 예감이 들어서이다.

위협을 주던 군인들이 돌아가고 난 뒤 법당으로 들어갔다. 법당마루가 흙 묻은 군화자국으로 얼룩진 것을 보고 한동안 망연자실해 멍하니 서있었다. 마루를 닦으며 너무나도 억울해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두 번 다시 이런 수모를 겪지 않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며 애꿎은 마룻바닥만 문질러댔다. 걸레로 깨끗하게 닦아내면 나쁜 기억이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1980년 10·27 법난이 일어난 당시의 일은 악몽이었다. 도반의 은사스님 절이 서울에서는 비교적 한적한 정릉에 있어 며칠 머물던 때였다. 운수납자(雲水衲子)로 다니던 무렵이어서 해제 철이 되면 보따리 풀어놓고 쉴 곳이 필요했다. 동안거가 얼마 남지 않아 좀 쉬어가려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지금도 무엇 때문에 혼이 났는지 알지 못한다. 억울하게 당한 사정을 누구에게 표현할 길조차 열려 있지 않아 지금껏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

누가 누구를 응징하겠다고 온 것인가. 땅을 치며 통곡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호소해도 받아줄 이가 없어 스스로 달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지금도 그때 일이 떠오르면 아픔을 달래려고 가슴을 부여잡는다. 전국의 사찰에 그런 크나큰 충격을 주고도 위정자들은 지금껏 아예 고개를 돌리고 모르쇠노릇만 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죄 없는 스님들을 잡아가고 사찰을 짓밟아놓은 위정자들이 버젓이 잘 살고 있는 현실이다. 법난을 당한 스님들에게 아무런 보상이나 위로 한마디 없이 지내는 그들은 양심의 가책이 없는지 아직도 지난 과오를 뉘우치는 기색이 하나도 없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티끌만큼이라도 가졌다면 10·27 법난과 같은 만행을 애당초 저지르지 않았으리라.

국가에서 군인들을 풀어 같은 시간에 전국의 사찰에 들이닥쳤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들었다. 아무리 독재정권이라도 영장도 없이 들어와 그런 행패를 부리다니…. 조폭도 아니고, 병역의무를 치르기 위해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이 그런 일에 동원되었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른 곳도 아닌 부처님을 모신 신성한 사찰에 들어와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갔으니 얼마나 막돼먹은 짓인가.

성스러운 사찰에 구둣발로 들어와 짓밟는 행동만 한 게 아니다. 위아래도 없이 막말을 하며 아무 거리낌 없이 방자하게 굴었다. 조선시대, 유교를 받들고 억불정책을 펼쳤던 당시에도 덕이 높은 스님을 국사(國師}로 청해 역대의 왕들이 스승으로 모셨거늘…. 봉건시대에도 없던 일이 일어나다니, 민주화를 향해 가야 할 시기에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정치를 자행(恣行)했으니 참으로 분통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뒤로 곳곳에서 믿기 어려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종단의 큰스님들을 비롯해 중진스님들은 물론 엔간한 사찰의 주지스님들도 무슨 죄인지도 모른 채 속속 잡혀갔다는 말들이었다. 여러 경로로 알아보니 소문이 아니고 모두 사실이었다.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스님이 있는가하면 살아있더라도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스님도 있었다. 지금도 병을 안고 사는 스님들도 많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마음을 다쳐 고생하는 스님들은 더 많은 현실이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10·27법난 후유증은 의외로 심하다.

쾅쾅 새벽을 깨트리는 대문소리를 들었던 1980년 10월 27일 새벽 2시. 그 후로 삼십육 년이 지났고 곧 삼십칠 년이 된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10·27 법난이 일어난 날이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법난을 일으킨 자들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동안 불교집안의 일에 귀를 기울여주는 위정자는 한 명도 없었다. 덩달아 매스미디어의 관심도 낮아졌다. 불교관련의 방송과 신문만이 목소리를 낼뿐 세간의 관심에서 차차 멀어져만 갔다.

국회의원들은 예나 지금이나 선거 때마다 입으로는 공약을 실천하겠노라고 떵떵 큰소리친다. 그러나 당선되고 나면 공약은 뒷전이고 자기 앞의 이익 챙기기에 바쁜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국민의 소리를 대변해준다는 국회의원이 누구를 위한 민선의원인지 모를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국민들은 의지할 데 없어 갈팡질팡 갈지(之)자 걸음을 걸어야만 했다.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마다 법난 문제를 잘 해결해 주겠거니 하고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하는 악순환이 36년간이나 되풀이되었다.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출범하였다. 불교계의 기대와는 달리 관심을 가져주기는커녕 그전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도리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이 믿는 종교에만 특혜를 베풀고 불교집안의 일엔 무관심이었다. 그런 일은 눈감아준다 하더라도 10·27 법난은 분명 성격이 다르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기에 승단의 몇몇 스님들은 계속 목소리를 내어왔다.

국가 지도자는 지나간 잘못은 사과하고 거기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주는 것이 도리이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외면할 일이 아니다. 나라가 바뀐 것이 아니고 지도자만 바뀐 것이므로 채무도 함께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느 정권의 일도 역사의 일부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과오를 되풀이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자세가 없으면 나라 안의 일은 물론 나라 밖의 일은 더군다나 제대로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의 위안부문제만 하더라도 아직까지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선현의 말씀은 오늘날 정치하는 위정자들이 기본으로 필히 알아두어야 할 말씀이 아닌가싶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다. 국민들은 어느 때보다 기대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나 불교계는 위정자들이 그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싶어 두고 봐야 별 볼 일이 없을 게 뻔하다고 기대하지 않았다. 몇 십 년 동안 어느 정권도 불교승단에 제대로 해준 게 없어서이다. 이젠 법난의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기에 앞서, 우리자신이 나서서 해결해 보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며 깊이 각성하게 되었다.

법난 해결책의 일환으로 조계종 총무원에서 시행하는 제1회 10·27법난 문예공모전이 생겼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 스스로 법난을 해결할 의지의 물꼬를 튼 셈이다. 이제껏 참고 있었던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공모전을 통해 건설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설렌다.

두 번 다시 10·27 법난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승단 자체의 노력이 요구된다. 지나간 일을 탓하기에 앞서, 안으로는 내실을 기하고 밖으로는 승단의 힘을 강화하여 변화하는 시류에 대처하는 자세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확고한 신념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마음으로 먼저 내공을 착착 쌓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면 실력이 점점 향상될 것이다. 그런 힘이 뭉쳐지면 어느 누구도 감히 불교집안을 마음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불교는 부처님의 근본사상인 화합을 중요시한다. 화합해서 모여 산다고 승단이라 하지 않는가. 다 같이 어울려 살려면 남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자비를 잘못 베풀면 ‘자비가 짚 벙거지’ 라는 말처럼 되어버리기 십상이므로 ‘지혜로운 자비’를 베풀려면 화쟁(和諍)사상으로 대처해야 한다.

신라 원효(元曉)가 설한 화쟁사상을 실천한다면 다른 이론은 거론할 것이 못된다. 화쟁은 불교경전의 뜻을 바로 살려 모든 주장을 화합하려는 이론으로 현대에 맞는 사상이자 철학이어서다. 위정자들을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불교교단의 승려부터 화쟁사상으로 마음가짐을 다져야 하지 않을까싶다. 진리는 불변이어서 원효의 화쟁사상이 지금도 우리들을 일깨워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아가 불교교단의 내부부터 서로 화합하는 장을 만들어 실천에 옮겨야 한다. 무엇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빠르게 법난을 극복하는 길인가를 모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불교종도들이 새로운 각오로 다짐하고 서로 힘을 합쳐 해결하는 것이 가장 지혜 있는 방법이 아닐까싶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진작부터 통감하고 해야 할 일이었다.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응징을 가한 자는 언젠가 반드시 그보다 더한 응징을 받게 되어 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불변의 진리 앞에는 누구라도 무릎을 꿇게 되어 있어서다. 이제는 걱정만 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불교승단이 자각하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면 그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저절로 해결될 것이기에. 10·27 법난에 대한 문제는 승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화합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어서다. 화합이 결속되면 머지않은 장래에 화합의 장이 활짝 열리는 날이 반드시 다가오리라고 믿는다.

‘누가 응징을 받을 자인가?’라고 물어온다면 ‘응징을 줄 이도 받을 이도 없다’고 대답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원망(願望)이려나.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로 예불을 올릴 때마다 부처님께 머리 조아리고 두 손 모아 발원한다. “우리 모두 다 함께 부처님 같이 되기를.”

 

 

  수미단(須彌壇)에 계신 부처님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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